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뤼튼 휴잇, 포기란 모른 채 달려온 5막의 인생

by time2gold 2025. 5. 27.

“이겨서 환호한 적보다,
질 뻔한 경기를 버텨낸 기억이 더 많다.”

- 뤼튼 휴잇, 2016년 은퇴 인터뷰 中

누군가는 라켓을 휘두르며 기록을 쌓고,
누군가는 라켓을 움켜쥔 채 ‘존재’를 남긴다.
뤼튼 휴잇은 후자였다.

 

호주 지도에 호주 국기를 그려넣은 사진

 

🔹 1막: 작은 몸, 야성을 품다 (1981~1998)

 

뤼튼 휴잇은 1981년 2월 24일,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호주 풋볼 유망주였으나 13세 때 라켓을 들며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어머니 셰리 휴잇은 체조 코치, 아버지 글린은 풋볼 선수였고,
이들 가족은 뤼튼의 테니스 전념을 적극 후원했다.

1996년, 그는 호주오픈 주니어 단식 결승에 진출,
1997년에는 ITF 주니어 랭킹 세계 17위까지 오르며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 1998년, 불과 16세 10개월의 나이로 애들레이드 ATP 투어에 출전해
1회전에서 비외른 포르스탕을 꺾고, 결승에서 당시 톱랭커 제이슨 스톨텐버그를 꺾으며 우승.
이로써 그는 오픈 시대 최연소 투어 우승자 중 한 명이 되었고,
호주 언론은 그를 "미래의 스티브 워"에 비유하며 극찬했다.
(출처: The Sydney Morning Herald, 1998)

 

🔹 2막: 승부사, 세계 정점에 서다 (1999~2003)

 

뤼튼 휴잇의 전성기는 빠르고 격렬했다.
2001년, US오픈 우승.
2002년, 윔블던 우승.
그리고 ATP 최연소 세계 랭킹 1위.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통계보다 감정으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 2세트 0:5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
  • 백핸드 슬라이딩으로 공을 되살려내는 사람
  • 가슴을 두드리며 “COME ON!”을 외치는 사람

그는 베이스라인에서 끝까지 버티는 유일한 선수였다.
공이 라인을 벗어날 때까지,
심장이 멈출 때까지,
그는 코트 위에서 싸웠다.

많은 이들이 그의 승리를 말하지만,
사실 휴잇은 질 뻔한 경기에서 이겨낸 선수였다.

 

📌 이 시기 라이벌들과의 전설적인 경기들

  • 2001년 US오픈 결승 vs 피트 샘프라스
    → 7-6, 6-1, 6-1 완승
    → 서브 앤 발리의 왕 샘프라스를 리턴으로 압도한 상징적인 경기
  • 2002년 윔블던 결승 vs 다비드 날반디안
    → 6-1, 6-3, 6-2
    → 정밀한 베이스라이너가 잔디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증명
  • 2001년 마스터스컵 준결승 vs 쿠에르텐
    → 풀세트 접전 끝 승리
    → 심리전과 체력전 모두 승리한 대표 경기
  • 2002년 인디언 웰스 결승 vs 티머 헤먼
    → 3세트 역전승
    → COME ON! 세리머니가 경기장을 뒤덮은 순간
  • 2003년 마스터스컵 vs 로저 페더러
    → 패배였지만 두 세대가 맞붙은 교차점으로 회자

이 시기 뤼튼 휴잇은
누구보다 많이 뛰고, 누구보다 늦게 포기하는 선수였다.

 

🔹 3막: 부상, 그리고 인간의 시간 (2004~2012)

 

전성기가 한창이던 휴잇은 2004년을 기점으로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고관절, 무릎, 발목…그렇다면 왜 그는 그렇게 자주 다쳤을까?

사실, 뤼튼 휴잇의 테니스 스타일은 몸에 너무 가혹한 방식이었다.

  • 상대의 공을 끝까지 따라가며 슬라이딩
  • 코트 끝까지 다가가며 무릎을 꿇듯 리턴
  • 순간 방향 전환을 반복하는 전후좌우 이동

그는 한 포인트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누군가의 “대충 넘기는 공”도,
그에겐 “되살려야 할 전투”였다.

 

🏥 주요 부상 정리


- 2005년: 고관절 통증
- 2008년: 엉덩이 관절 수술
- 2010년: 무릎 연골 수술
- 2011년: 발목 인대 수술

 

주치의 Dr. David Young:
"그는 일반 선수보다 몸을 1.5배 더 혹사한다."

 

🩺 하지만 더 고통스러웠던 건 심리적인 고립이었다.
경기력이 무너지고, 세상은 그를 ‘과거의 선수’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는 매일 6시간씩 재활했고,
러닝과 치료만으로도 자신의 리듬을 되찾으려 애썼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그는 말했다.
“나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내 안에 아직 '그때의 나'가 살아있다.”

팬들도 알았다.
이 시기의 휴잇은, 승리보다 더 큰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 4막: 코트의 어른이 되다 (2013~2016)

 

경기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휴잇은 여전히 코트 위에 섰다.
복식에서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고,
데이비스컵 대표팀의 기둥 역할을 하며,
그는 팀의 중심에서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의 뤼튼 휴잇은 ‘선수’와 ‘지도자’의 경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테니스는 기술보다 태도의 경기”라는 철학을 후배들에게 심어주었다.
라커룸에선 ‘캡틴’, 코트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표정으로 공을 쫓았다.

 

🎾 기억에 남는 장면 – 2015년 US오픈 2회전 vs 버나드 토믹
- 호주 대표팀 후배와의 세대 교체를 암시하는 경기
- 풀세트 대접전 끝에 패배
-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작별을 보냈고,
토믹은 “그와 같은 시대를 뛴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말했다

2016년, 호주오픈 복식 와일드카드를 마지막으로,
그는 조용히 은퇴했다.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코트에 남아 있었다.

 

🔹 5막: 아버지, 지도자, 그리고 계속되는 달리기 (2016~현재)

 

“테니스를 떠난 게 아니라,
그저 내 자리를 바꾼 것뿐이다.”

- 휴잇, 2019년 ATP 인터뷰

휴잇은 본격적으로 호주 대표팀 감독이 되었고,
닉 키리오스, 드미노, 코키나키스 등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했다.

 

📌 대표 업적:
- 2017년~: 데이비스컵 감독
- 2019 ATP컵 4강 진출
- 2022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 헌액

 

그는 또한 자신의 아들 크루즈 휴잇을 직접 지도하며,
라켓을 든 아버지로서 또 다른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복식 와일드카드로 투어에 출전하며
“테니스는 경기보다 관계”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

 

🎾 마무리하며 – 뤼튼 휴잇, '지지 않기 위한 사람'

 

그는 잘 쳐서 이기는 선수가 아니라
끝까지 버텨서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커리어는 초반의 불꽃만이 아닌,
중반의 불씨, 후반의 따뜻한 불빛까지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를 ‘영원한 챔피언’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후배들의 교과서, 팬들의 감동서사로 영원히 남는다.

 

마지막으로, "휴잇의 아들 크루즈 휴잇은 현재 어떤 스타일의 선수로 성장 중일까?"에 대해 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

 

크루즈 휴잇 (Cruz Hewitt)

  • 출생: 2008년생 (현재 약 16~17세)
  • 플레이 스타일: 아버지처럼 빠른 발과 끈질긴 수비가 돋보이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어요.
  • 기술적 특징:
    • 안정적인 베이스라인 플레이
    • 꾸준히 스핀과 정확도를 중시하는 스타일
    • 상대적으로 큰 파워보다는 리듬과 위치선정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 멘탈/태도: 휴잇의 지도 아래, 코트에서의 끈질김과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아주 중요시합니다. 실제로 경기를 보면, 코트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집중력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해요.

🎾 주요 성과

  • 주니어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며, 최근엔 ITF 주니어 랭킹에도 진입했어요.
  • 아직까지는 아버지 휴잇만큼의 주목을 받는 건 아니지만, 호주 테니스 유망주로 주목받는 중입니다.

 

 

2002 Andre Agassi vs Lleyton Hewitt Full Match | US Open Semifinal 링크 

https://youtu.be/Kh4fDSfOPjI?si=_jvJYpugm-L6Hg1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