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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의 무게가 바뀌던 순간 – 2000년대 초반 여자 테니스 스타일 대전환

by time2gold 2025. 5. 29.

윔블던 테니스 코트 사진

 

1990년대 후반까지 여자 테니스는 기술과 지능이 중심이었다.
특히 마르티나 힝기스를 위시한 '두뇌형 플레이어'들이 랠리를 설계하고, 경기를 읽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흐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여자 테니스계는 눈에 띄게 속도와 힘의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닌, 여자 스포츠 전반의 ‘지형 변동’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이 변화를 이끌었고, 누가 적응했고, 누가 뒤처졌는가?

이 글은 바로 그 변곡점을 기록하는 이야기다.


1. 기술에서 파워로 – 스타일 전환의 서막

기술 테니스의 정점이었던 1997년, 마르티나 힝기스는 단식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녀의 플레이는 슬라이스, 드롭샷, 발리, 타점 조절 등 전통적인 유럽식 테니스의 교과서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이 흐름은 급속히 바뀐다.
서브 스피드가 올라가고, 베이스라인 플레이가 길어지며, 탑스핀 위주의 묵직한 타구가 대세가 된다.

기존의 기술적 플레이는 ‘더 이상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2. 시대를 바꾼 이름들 – 윌리엄스 자매, 데이븐포트, 그리고 샤라포바

가장 선두에 선 것은 세리나 윌리엄스비너스 윌리엄스였다.

  • 세리나 윌리엄스는 라켓 헤드 속도, 강철 같은 멘탈, 탄력 있는 움직임으로 베이스라인에서 경기를 ‘짧게’ 끝내는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녀의 서브는 남자 선수 수준의 속도를 자랑했고, 포핸드는 타점이 아닌 각도와 시간을 무기로 썼다.
  • 비너스 윌리엄스는 더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다. 리턴과 포핸드를 활용해 상대를 좌우로 흔든 후 빠른 발을 이용해 결정구로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 린제이 데이븐포트는 파워 + 정교함의 교차점이었다. 무거운 포핸드와 예측 불가한 백핸드로 기술형 선수들과의 긴 랠리를 거부했다.
  • 여기에 마리아 샤라포바가 등장한다. 2004년 윔블던에서 세리나 윌리엄스를 꺾고 우승한 샤라포바는 러시아계 장신 선수 특유의 강한 서브, 강력한 포핸드, 그리고 관중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로 파워 테니스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샤라포바는 힝기스와 달리, 전략보다 속도와 강도로 승부했다. 그녀의 타구는 높이보단 각도와 깊이에 집중되어 있었고, 특히 리턴 게임에서의 짧은 반응 시간 내 공격력은 독보적이었다.

 

3. 무엇이 바뀌었나? – 경기 전술과 코트 흐름의 진화

기존의 테니스가 '시간을 쓰는 스포츠'였다면, 2000년대 테니스는 '시간을 줄이는 스포츠'로 변화했다.

  • 랠리 길이 단축: 평균 7~9구에서 3~5구로
  • 발리 활용도 감소: 서브 앤 발리 전술은 거의 사라짐
  • 서브 스피드 증가: 세리나, 데이븐포트, 샤라포바 모두 평균 180km/h 이상
  • 탑스핀 비중 증가: 공을 눌러 때리는 플레이 증가, 높이보다 무게 중심 이동
  • 코트 점유 영역 확대: 베이스라인 바깥에서도 주도권 장악

단순히 스타일이 아니라, 테니스 전체의 경기 리듬 자체가 달라졌다.

 

4. 누가 살아남았는가 – 적응과 탈락의 분기점

선수 유형 대표 선수 변화 적응 결과
기술형 마르티나 힝기스, 산체스 비카리오 탈락, 은퇴 가속
하이브리드형 저스틴 에넹, 킴 클리스터스 적응 성공, 다수 메이저 우승
파워 특화형 세리나/비너스 윌리엄스, 샤라포바, 데이븐포트 시대 중심 주도

저스틴 에넹은 가장 성공적으로 스타일을 조합한 예였다. 기술, 각도, 백핸드 원핸드 샷을 유지하면서도 훈련과 피지컬 강화로 파워에 대응했고, 결국 프랑스오픈에서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킴 클리스터스는 빠른 발과 강한 포핸드를 앞세워 윌리엄스 자매와의 경기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은퇴 후 복귀 후에도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할 만큼 적응력이 뛰어났다.

 

5. 경기장도 변했다 – 하드코트와 코트의 진화

2000년대 초반 여자 테니스 스타일의 변화는 단지 선수들의 몸만이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코트’ 자체의 조건에서도 비롯되었다.

■ US오픈과 호주오픈 – 원래 하드코트였다, 그러나 표면이 달랐다

US오픈은 1978년부터 하드코트(DecoTurf)를 사용하고 있었고,
호주오픈은 1988년부터 하드코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 두 대회 모두 코트 표면 브랜드와 반발 속도를 변경하며,
플레이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 호주오픈: Rebound Ace → Plexicushion → GreenSet (2020~)
    • Rebound Ace는 점착력이 높고 느림
    • Plexicushion(2008~)은 반발력 강화 → 빠른 타구 유도
    • GreenSet은 현재 투어 대부분의 표준과 일치 → 결과적으로 “공격형, 빠른 전개형 스타일”에 유리
  • US오픈: DecoTurf → Laykold (2020~)
    • Laykold는 탑스핀의 반응률이 뛰어나고 세로 회전이 많을수록 낙차가 커지는 구조

📌 핵심 요약:
코트 표면 브랜드와 특성 변경이 파워형 선수들의 전성기 기반이 되었고,
기술형 선수에게는 반응 시간 단축과 무게감 부족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 윔블던 – 전통의 상징, 그러나 잔디도 변했다

윔블던은 “가장 보수적인 토너먼트”라는 이미지와 달리,
2001년부터 코트 잔디의 종자 비율을 변경했다.

  • 변경 전: 혼합 잔디 (다양한 종류의 잔디 혼합)
  • 변경 후: 100% 페레니얼 라이그래스 (Perennial ryegrass)

그 결과, 공의 높이 반발이 증가하고, 예전보다 슬라이딩이 어렵고 공이 덜 미끄러지는 특성을 띠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다음과 같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 발리와 서브 앤 발리 스타일이 위축
  • 베이스라인에서의 랠리가 더 길어짐
  • 탑스핀과 플랫샷 중심의 파워 게임이 유리해짐

📌 전문가 코멘트 (BBC, 2013 윔블던 중계):
“잔디는 같지만, 경기 양상은 하드코트를 보는 듯하다. 라켓과 몸이 아닌, 전술과 체력의 승부로 변모했다.”

■ 전체적인 영향 – 파워가 더 유리한 구조

이러한 코트 변화들은 기술적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보다는,
빠른 반응 속도, 강한 타구, 회전량 조절에 능한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 슬라이스 플레이는 반발력 증가로 효과 감소
  • 드롭샷과 네트 전진은 코트 접지력 변화로 리스크 상승
  • 특히 하이 바운드 볼을 상대하기 어려운 저신장 기술형 선수들에게 불리

즉, ‘파워 테니스 시대’는 경기장이 먼저 열린 셈이다.

 

6. 기술형의 귀환은 가능한가?

2000년대 초반 이후, 여자 테니스는 여전히 파워 중심의 판도다. 

그러나 최근엔 기술형 또는 하이브리드형의 재등장이 눈에 띈다.

  • 이가 시비옹테크 : 안정된 풋워크와 코트 커버리지를 바탕으로 파워와 전술을 조합하는 하이브리드형의 표본으로 성장했다.
  • 온스 자베르: 드롭샷, 슬라이스, 각도 조절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기술형 선수의 부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핵심 
힘과 기술의 균형, 그리고 코트 전체를 활용하는 입체적 플레이가 새로운 해답이 된다.

이는 기술형 선수들의 장점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흐름이며 20여 년 전 힝기스가 펼쳤던 테니스의 또 다른 진화를 의미한다.

결국 테니스는 한 가지 스타일만 살아남는 게임이 아니다. 시대마다 강세는 바뀌지만, 기술은 돌아오고,

그 기술은 더 강한 체력과 더 빠른 공 위에서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Maria Sharapova vs Serena Williams: Wimbledon final 2004 (Extended Highlights) 링크

https://youtu.be/GkuDViOUcG8?si=mPNWxUbF11pmRs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