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혈통을 지닌 미국 테니스 스타 제시카 페굴라. 2025 US 오픈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반전 드라마는 단순한 경기력을 넘어 삶 전체의 응축이다. 준결승의 사발렌카와의 대결은 사실상 결승이며,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완성형에 가깝다.
1. 억만장자의 딸이라는 프레임,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
1994년 생 제시카 페굴라, 그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부자 테니스 선수’를 떠올린다. 아버지 테리 페굴라는 셰일가스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되었고, 어머니 김 페굴라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으로, 현재 NFL 버펄로 빌스와 NHL 버펄로 세이버스를 공동 소유하고 있다. 이 화려한 가문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성공이 예약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제시카 페굴라의 진짜 이야기는 그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항상 “내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 왔다. 가족의 재력은 언제나 ‘그림자’였고,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노력해야 했다.
플로리다의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복된 훈련, 수없이 반복된 부상과 복귀. 2013년과 2016년의 무릎과 고관절 수술, 그리고 다시 복귀를 거듭하면서 그녀는 ‘안정적인 상승’이 아니라 ‘단계적 고통과 회복의 루프’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2. 지금의 페굴라, 경기에 감정과 설득력을 담다
2025년 US 오픈의 제시카 페굴라는 이전과는 다르다. 단순히 경기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경기를 ‘통제’하고 ‘설계’하는 선수가 되어 돌아왔다.
첫 라운드부터 8강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흐름을 자신 쪽으로 당기고, 흔들리지 않는 리듬을 유지하는 모습은 ‘부드럽지만 단단한’ 경기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포핸드는 정확하고, 백핸드는 부드러우며 강하다. 낮은 볼에도 민첩하고, 속도는 이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올라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코너워크와 대응 능력이다. 수세적 상황에서도 공격 전환이 빠르고, 체력 분배 능력도 고도화됐다. 누군가 페굴라의 테니스를 요약한다면, “심플하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이번 대회 초반 인터뷰에서 그녀는 “친구들과 이스케이프 룸에 다녀온 뒤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는 지금 그녀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보여준다. 여유, 집중력, 그리고 무엇보다 ‘즐기고 있다’는 태도. 그것이 2025년 페굴라다.
3. 사발렌카와의 준결승, 이것이 진짜 결승이다
2024년 US 오픈 결승에서 아리나 사발렌카에게 패한 기억은 여전히 그녀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번 2025년 준결승, 그 사발렌카를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번 대회에서의 페굴라는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훨씬 무르익었다. 승부욕은 여전하지만, 그것에 짓눌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발렌카의 강한 힘을 흘려내며, 긴 랠리에서 균형을 무너뜨릴 줄 안다.
이 대결은 많은 이들이 “실질적인 결승전”이라고 말한다. 결승 무대에서 어떤 선수가 올라오든—오사카, 아니시모바, 스비아텍, 무호바—누구든 페굴라에겐 ‘해볼 만한 상대’다. 오히려 준결승의 긴장감이 결승보다 더 뜨거울 수 있다.
4. 결승? 해볼 만하다, 지금 페굴라는 완성형이다
오사카는 상승세에 있고, 시비아텍은 여전히 철벽 같은 수비를 자랑한다. 아니시모바의 폭발력과 무호바의 전략적 플레이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페굴라는 이 모든 유형에 대응할 수 있는 완성형 선수다.
경기 리듬, 볼 밸런스, 심리적 여유, 기술적 정확성—이 네 가지가 모두 정점에 올라 있다. 이 조화는 단순한 우승 후보 그 이상의 ‘무르익은 승자’의 모습을 닮아 있다.
결론 : 제시카 페굴라, 이제는 ‘가능성’이 아닌 ‘현실’이다
그녀는 더 이상 ‘억만장자의 딸’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지 않는다. 지금 그녀는 ‘2025 US 오픈 우승을 가장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
준결승에서 사발렌카를 넘는다면, 그건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테니스 인생 전체에 대한 선언이 될 것이다.
페굴라는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강하게, 가장 조용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